영화 〈레옹〉은 처음 보았을 때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보았을 때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겉으로는 고독한 킬러와 상처 입은 소녀의 만남을 그린 범죄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외로움, 보호 본능, 성장,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결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재미로 소비되고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나이와 경험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영화로 남아 있다. 이 글은 왜 〈레옹〉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회자되고, 잊히지 않는 영화로 남아 있는지를 관계의 서사와 감정의 여운을 중심으로 풀어본다.
시간이 흘러도 다시 꺼내 보게 되는 영화
〈레옹〉은 처음 접했을 때 강렬한 설정으로 기억에 남는다. 말수가 거의 없는 킬러, 화분을 들고 다니는 기묘한 생활 습관, 그리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소녀 마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액션이나 사건보다도 인물들이 품고 있는 고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레옹은 능숙하게 사람을 죽이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살아본 적은 없는 인물이다. 사회와 단절된 채 규칙적인 일상 속에서 살아가며,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조차 익숙하지 않다. 마틸다 역시 어른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일찍 삶의 잔혹함을 마주한 아이이다. 가족의 부재, 무관심, 폭력 속에서 자라온 그녀는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태도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보호받고 싶다는 절실함이 숨어 있다. 이 두 인물의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의 결핍이 맞닿은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레옹〉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보다 ‘상태’를 기억하게 만드는 영화로 남는다.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는 명확한 교훈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남기기 때문이다. 레옹의 침묵, 마틸다의 직설적인 말투,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하지만 진지한 공기. 이런 요소들은 관객에게 쉽게 설명되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게 다가온다.
레옹과 마틸다, 단순한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서사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는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보호자와 아이의 관계로 보기에는 감정의 결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그렇다고 일반적인 사랑의 틀로 설명하기에도 어색하다. 하지만 이 애매함이야말로 〈레옹〉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이 영화는 관계에 이름을 붙이려 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를 통해 변화하는 두 인물의 모습을 묵묵히 보여줄 뿐이다. 레옹은 마틸다를 만나며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선택을 하는 법을 배운다. 돈이나 명령이 아닌, 감정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의 변화는 크다. 반대로 마틸다는 레옹을 통해 어른에 대한 불신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완벽하지 않고 서툴지만, 적어도 자신을 해치지 않는 어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관계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이 이 영화에 깊은 인상을 받는 이유는 감정이 지나치게 계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옹과 마틸다는 서로를 통해 성장하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영화는 그 불완전함을 굳이 해소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점이 이 이야기를 현실에 가깝게 만든다.
왜 영화 레옹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가
〈레옹〉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감정을 ‘정리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 이후에도 질문은 남고,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레옹의 선택이 옳았는지, 마틸다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답은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관객 각자가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또한 이 영화는 고독이라는 감정을 매우 정직하게 다룬다. 레옹의 고독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 마틸다 역시 많은 말을 하지만, 진심으로 이해받지 못한다. 이 고독이 잠시나마 서로를 통해 완화되는 과정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감정이기에 더욱 오래 남는다. 결국 〈레옹〉은 완벽한 인물도, 완성된 관계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던 시간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나이가 들수록 다르게 읽히고, 삶의 어느 시점에서든 다시 꺼내 보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영화란,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레옹〉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