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 마음
- 음악이 건네는 조용한 위로
-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졌던 이유

영화 '비긴 어게인'은 거창한 성공담이나 극적인 반전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삶이 한 번쯤 어긋난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영화입니다. 사랑이 끝난 뒤, 일상이 무너진 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보여줍니다. 주인공 그레타와 댄은 각자의 실패와 상처를 안고 있지만, 서로를 구원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저 함께 음악을 만들며, 각자의 속도로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시 시작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지금 이 자리에서도 괜찮다”라고 말해 주는 듯한 태도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비긴 어게인을 통해 왜 다시 시작하고 싶어 졌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제 삶의 어떤 지점을 건드렸는지 차분히 풀어보고자 합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 마음
살다 보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열심히 쌓아 올렸다고 믿었던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걸어왔던 길이 틀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도 합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은 바로 그런 시점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그레타는 연인과 함께 음악의 꿈을 안고 뉴욕에 왔지만, 성공 앞에서 관계는 쉽게 흔들리고 결국 혼자가 됩니다. 댄 역시 한때는 잘나가던 음악 프로듀서였지만, 지금은 가족과 일 모두에서 밀려난 인물입니다. 이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들의 실패를 과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물겨운 장면이나 억지스러운 불행을 쌓아 올리지 않습니다. 대신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상실의 순간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그레타가 기타 하나를 메고 낯선 도시를 걷는 장면, 댄이 술에 취한 채 음악을 듣는 장면들은 과장되지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아마도 그 장면들 속에서 제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바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잠시 멈추고,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헷갈려합니다. 비긴 어게인은 그 멈춤의 시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 자체가 다시 시작을 위한 준비 과정일 수 있다고 말해 주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시작은 슬프지만, 이상하게도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음악이 건네는 조용한 위로
비긴 어게인의 중심에는 언제나 음악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음악은 경쟁하거나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거리에서 녹음하는 장면들이 대표적입니다. 완벽한 스튜디오 대신, 도시의 소음과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까지 함께 담아내는 방식은 이 영화가 바라보는 삶의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지금의 환경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메시지가 음악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레타가 부르는 노래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솔직합니다. 사랑이 끝난 뒤의 감정, 혼자가 된 불안, 그래도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이 담담하게 흘러나옵니다. 듣고 있으면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음악이 위로가 되는 순간은 대개 이런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남겨주는 것 말입니다. 댄이라는 인물 역시 인상 깊습니다. 그는 그레타를 통해 다시 음악을 발견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누군가를 성공시키기 위해 애쓰기보다, 다시 음악을 좋아하던 자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중요한 흐름입니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정받는 것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이 왜 중요한지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 중 하나는 ‘조급함이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더 잘해야 하고 더 빨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긴 어게인은 속도를 재촉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다고 말해 줍니다. 그 태도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던 이유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당장 무엇을 바꾸고 싶다기보다는 마음 한편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지금까지의 선택이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그 선택이 전부 실패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비긴 어게인은 “다시 시작하라”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 여기서도 다시 시작은 이미 진행 중일 수 있다”라고 말해 주는 듯합니다. 삶은 종종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갑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뒤처졌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뒤처진 것이 아니라, 잠시 다른 리듬으로 걷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레타와 댄이 각자의 자리에서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 음악을 이어가듯, 우리 역시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비긴 어게인은 보고 나면 크게 울게 되는 영화는 아닙니다. 대신 조용히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힘든 하루를 보낸 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이 영화의 음악과 장면들이 문득 떠오를 것 같습니다. 다시 시작해야 할 용기가 필요할 때가 아니라,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허락이 필요할 때 이 영화는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졌습니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나답게 살아보는 것부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