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여전히 공감되는 이유
- 고독한 도시의 감정
- 지금의 우리

1994년의 고독이 현재가 되는 순간 영화 <중경삼림>은 1994년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지금 다시 보아도 전혀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친근한 이야기처럼 다가옵니다. 이 영화에는 대단한 사건도, 명확한 결말도 없습니다. 대신 혼자 남은 사람들이 있고,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있으며,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중경삼림을 볼 때마다 “이 영화는 왜 이렇게 오래 살아남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답은 아마도 이 영화가 특정 시대의 유행을 담았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를 가리지 않는 감정, 즉 고독과 기다림, 그리고 사랑의 타이밍을 정직하게 담아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글은 중경삼림이 왜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자가 되는지, 그리고 그 감정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어떻게 닮아 있는지에 대해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여전히 공감되는 이유
중경삼림 속 인물들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형사이지만 영웅적이지 않고, 사랑을 하지만 확신에 차 있지도 않습니다. 이별을 겪고도 울부짖지 않으며, 대신 혼잣말로 마음을 정리합니다. 파인애플 통조림에 유통기한을 붙이고, 가게 물건들에게 말을 걸며, 누군가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기다립니다. 저는 이 장면들이 과장되지 않아서 더 진짜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이 끝났을 때 우리가 하는 행동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직접 말하지 못한 감정은 물건이나 공간에 남겨 두고, 의미 없는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며 시간을 버텨냅니다. 이 영화가 여전히 공감을 얻는 가장 큰 이유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왜 외로운지”, “왜 사랑이 실패했는지”를 풀어주지 않습니다. 대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줍니다. 바쁜 도시 속에서 혼자 걷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혼자인 느낌을 받는 순간들 말입니다. 저는 이 방식이 요즘 시대와 더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설명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설명하지 않는 감정에 더 쉽게 공감하게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영화가 사랑을 해결책처럼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모든 고독이 사라질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잠시 스며들었다가, 또 다른 고독을 남기고 떠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달콤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 균형이 시간이 지나도 이 작품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고독한 도시의 감정
이 영화릐 배경이 되는 도시는 늘 붐비고 빠르게 움직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고, 카메라는 흔들리듯 인물들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합니다. 저는 이 대비가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시끄러운데,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조용한가. 혹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데 왜 혼자인가. 중경삼림은 도시가 만들어내는 고독을 아주 감각적으로 보여 줍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늘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이미 떠난 사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붙잡지도 않고, 매달리지도 않습니다. 그저 “혹시”라는 마음으로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저는 이 모습이 지금의 우리의 관계들과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메시지를 보내지 못하고 휴대폰만 들여다보거나, 이미 끝난 관계를 마음속에서 계속 반복 재생하는 모습 말입니다. 중경삼림은 이런 감정을 1994년에 이미 담아냈다는 점에서 놀랐습니다. 공간의 사용도 인상적입니다. 좁은 집, 가게, 복도 같은 장소들은 인물들의 감정을 대신 설명해 줍니다. 넓은 세상 속에서 이들이 머무는 공간은 늘 제한적입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며, 물리적 공간보다 마음의 공간이 더 좁아질 때 사람이 얼마나 외로워지는지를 느꼈습니다. 중경삼림의 도시는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이 오히려 인물들을 더 작게 보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고독은 과장되지 않고,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지금의 우리
중경삼림이 지금도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동일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술은 발전했고, 소통의 방식은 훨씬 빨라졌지만, 마음의 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혼잣말을 하고, 타이밍을 놓치고, 스쳐 간 인연을 오래도록 생각합니다. 중경삼림 속 인물들이 파인애플 통조림에 의미를 부여했듯, 우리도 하찮은 것에 감정을 담아 하루를 버텨냅니다. 이 영화는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럴 수도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외로운 것도, 기다리는 것도, 엇갈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 태도가 이 영화를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게 만든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로를 강요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경삼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이 호감을 느끼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처음에는 분위기에 끌리고, 그다음에는 감정에 머물고,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기억과 겹쳐 보게 됩니다. 이 영화는 “사랑은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랑이란 이런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보여줍니다. 1994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그 정직함 때문일 것입니다. 중경삼림을 다시 보고 나면, 저는 늘 도시의 밤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불이 켜진 창문, 혼자 걷는 시간들이 더 이상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고독을 낭만화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중경삼림은 지금도 공감을 얻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영화로 기억될 것이라 생각합니다.